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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4 올 여름 기다리는 것들
  2. 2008.02.17 추격자 1
  3. 2007.09.23 The Bourne Ultimatum
  4. 2007.06.30 Transformers
  5. 2007.05.24 Pirates of the caribbean : At world's end

올 여름 기다리는 것들

Movies 2008. 7. 24. 02:09

The Dark Knight

전작인 [Batman Begins]를 통해 어두운 내면을 버리지 못하는 코스튬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진지한 드라마로 완성해 낸 놀란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 발짝 더 나가 그 세계를 더욱 깊고 넓게 확장시킴과 동시에, 현실의 반영으로 만들어 내려고 하는 듯 하다. 환상 속의 어느 세계에서 일어나는 영웅의 일대기를 넘어, 박쥐와 광대 가면의 외피 안 깊숙한 곳에서 현실을 은유하게 된 이번 작품은 히어로물로서도, 어두운 드라마로서도 최고의 완성도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연코 올 여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


WALL-E

Pixar의 이름만으로도 놓칠 수 없는 작품.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을 빌어 가슴을 울리는 인간의 감정을 그려내는 픽사의 능력은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명장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북미 개봉과 한국 개봉 사이의 시차가 커서 일찍 접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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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X-Files : I want to believe

다른 영화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고 있지도 못하고 있거니와 완성도를 가늠하기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사뭇 오래된 이야기의 귀환이지만 긴 세월을 기다려왔던 엑필들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반가운 소식도 없다. 각자 나름의 영역에서 활동했지만 그래도 Mulder와 Scully가 너무나도 익숙한 Ducovny|Anderson을 간만에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일 터. 첫 번째 영화와 같은 재앙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시에 한국에서는 특별히 더빙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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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긴 호흡을 가다듬은 한석규와 충분히 인상적인 차승원, 두 배우의 조합만으로도 기대에 한껏 부풀게 만든 영화. [혈의 누]이후부터 코믹연기를 하지 않는 차승원에 대한 기대가 항상 있었고, 한석규에 대한 기대야 말할 나위 없었기 때문에. 다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곽경택 감독의 작업때문에 조금 우려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 배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놓칠 수 없는 영화 가운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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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Movies 2008. 2. 17. 03:00


[추격자]의 전개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다른 영화들, 특히 범죄를 다루는 스릴러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물의 뒷 배경을 설명하거나 사건의 발단과 전개를 공들여 묘사하는 등의 일은 일절 하지 않는다. 그 이전에, 영화는 영화 내에서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조차 거의 하지 않는다. 현실에 습자지를 대고 그려놓은 것 같은 공간을 화면에 풀어두어 지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화면 속의 세계가 [우리가 살아 숨쉬던 어떤 곳]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일 따름이다. 그렇게 솜씨좋게 들어낸 빈 시간에 자리잡은 것은 이유와 발단과 전개가 생략된 사건 그 자체이다. 초반부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영화는 인물을 설명하지 않고 아주 간략하게 앞으로 필요한 부분만 보여준 다음 당연한 기대를 배반하고 사건까지 모두 끝내버린다. 우리는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이야기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인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손에 쥐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흔히 스릴러 영화에서는 수수께끼를 영화 전개의 가장 큰 장치로서 활용하고는 한다. 범인은 모두 알지만, 주인공은 모르는 것들을 풀어 내는 일련의 과정을 축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즉 주인공과 지켜 보는 사람들은 같은 사실을 공유한다는 점이 핵심이 된다. 그러나 [추격자]에서는 이 구도를 역으로 뒤집어 버렸다. 초입부가 지나는 순간 우리는 범인과 같은 사실을 공유하게 된다. 누가 죽었고, 어떻게 죽었으며, 누구는 어떻게 되었고, 또 가장 중요한, 엄중호가 찾는 누군가는 어디에 있고. 그리고 관객이 상세하게 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쫓는 쪽에 서 있는 경찰과 엄중호는 전혀 알아내지 못했으며 온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뛰어 다니면서야 한 가닥 한 가닥 잡아나가는 데서 생기는 그 엇나감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는 것이다. 대척점을 이루는 지영민-엄중호의 대립구도에서 엄중호에게는 상대적으로 감정이입이 쉬운 반면, 지영민에게는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러한 구도를 이루어 내는데 도움이 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추격자]에서는 인물을 구축하기 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단편적으로 필요한 사실만을 보여주거나 제시함으로써 인물을 완성시키고, 그 이미지만을 끝까지 이용한다. 엄중호나 지영민 모두 단단하게 포장된 상자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엄중호가 전직 형사였고 뇌물을 받아 해직되었으며 현재는 전화방으로 먹고 살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엇나간 나쁜 놈이라는 사실까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러한 사건이나 사실을 연결하는 동기나 배경같은 것은 일절 볼 수 없다. 지영민의 경우는 이보다 더 극단적이다. 가족이 있다는 전개상 필요한 부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그는 살인을 한다. 살인의 동기마저도 [불명]이고, 불완전한 추측이 그 자리를 메운다.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같은 좀 과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체적으로 살인자에게 일정 부분의 배경을 주어 심정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것들을 걷어냄으로써 기계적으로 살인을 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감정 이입을 차단하는 효과를 이끌어 낸다.

이러한 효과를 좀 더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배우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하정우의 열연은 참으로 놀랍다. 초반부 망원우체국에서 여자를 만나 집으로 데려가는 부분이나, 얼마 후 경찰서에 끌려와 초콜릿을 열심히 빨아먹는 장면에서의 지영민은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 김미진을 살해하기 위해 정을 내려치는 모습에서도 그러한 순진함이 조금씩 섞여 배어 나오면서 그 순간의 파괴력을 끌어올린다. 반대로 그러한 천진한 외피가 완전히 깨어지는 부분에서 보이는 거친 모습은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살인자로서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방법이 된다. 그리고 연기에 있어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천진난만한 외피를 반쯤 깨고 본성을 드러낼 때의 모습을 지독히도 잘 수행해냄으로써 지영민이라는 인물을 살인자로서 [공포스럽게]느낄 수 있게 한다. 처음 경찰서에 잡혀가서 반쯤 웃으면서 살인을 했음을 고백하는 장면과 탈출한 김미진을 다시 마주 본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어떻게 나왔느냐고 묻는 장면에서 보이는 그 비현실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모습은 지영민이라는 인물의 묘사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정우가 인터뷰에서 했던 지영민에 대한 분석 中 ["피자 시킨 게 도착해서 막 먹으려고 하는 찰나에 경찰서에 들어간 거다. 그래서 경찰서 있는 내내 그 피자만 생각하다 풀려났다고나 할까. 그것도 계속 다이어트 하다가 딱 하루 마음껏 먹기로 한 날에 말이다"]는 부분을 보았을 때 하정우가 만들어낸 지영민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잡을 수 있다.

김윤석의 엄중호는 지영민보다는 좀 더 생생해서 감정이입이 쉬운 인물이다. 엄중호도 지영민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잘 가려진 인물이기는 매한가지어서 많은 부분을 추측에 기대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속물적이고 현실적이었던 엄중호가 지독한 추격을 반복하면서 어느 새인가 자신의 이득과는 관계 없는 어떤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승리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조금은 작위적인 똑똑하기 짝이 없는 김미진의 딸이 이를 위해서 소비되는 인물로 보이기는 하지만 김윤석은 다른 배우들에게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그 퇴폐적인 이미지를 속물적인 엄중호에 완전히 일치시킨 후 그가 그 속물적인 계산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발산할 때의 순간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걸게 뱉어내는 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점만 놓고 보아도 엄중호라는 인물을 그려낸 김윤석의 가치는 매우 크다.

영화 초입에서 만들어낸 관객과 주인공과의 엇나감 이외에도 영화는 곳곳에서 한 발자욱씩을 비틀어낸다. 쫓고 쫓기는 사람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빠른 시간만에 쫓기는 사람은 경찰서에 앉아 긴 시간을 하릴없이 보낸다. 남은 것은 확고한 증거를 찾아야 하는 경찰과 잡혀간 아가씨를 찾아야 하는 엄중호의 수색이다. 그러면서도 우왕좌왕하는 경찰보다 더 열심히 악착같이 뛰어다니는 엄중호가 지영민이 스스로 고백한 살인을 가장 나중에야 믿는 인물이라는 점도 기묘한 역설이다. 이러한 엇갈림들이 하나둘씩 엉켜가면서 만들어내는 정보의 공백이 관객들이 긴장을 뺄 힘을 주지 않는 가장 큰 힘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고 보지 않더라도 영화의 영상이 만들어낸 세계는 지독하게 일상적이고 평이한 공간이어서 현실적이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골목길 언저리에 위치한 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비일상, 게다가 그 비일상을 저지르는 인물마저 일상적인 모습으로 미소지으로 유유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영화에서 묘사되는 폭력과 살해보다도 외려 공포스럽다. 담배가게에 들어선 지영민의 모습은 그러한 일상과 비일상이 한 곳에서 뭉쳐 폭발하는 지점이다. 과도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폭력의 묘사와 함께 감정 이입을 위한 쇼트들이 번갈아 반복됨에도 그 장면은 그래서 지독하게 무섭고 아프다.

[추격자]는 참신하(기만 한) 설정이나 거듭되는 반전에 함몰되지 않고도 얼마나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건을 터뜨리고 그 이야기를 착실하게 엮어나감으로써 영화는 영화 시간 내내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짧지 않은 상영 시간이지만 시종일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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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urne Ultimatum

Movies 2007. 9. 23. 23:51

Paul Greengrass의 성취는 실로 놀랍다. 그는 익숙하게 접해오던 요소들을 거침없이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이전 작인 Bourne Supremacy와 이번 작 사이에 본질적으로 달라진 요소는 거의 없음에도 이 영화가 훨씬 더 나은 성취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말할 나위 없이 그 원숙미에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전작을 계승하며 전작의 성취를 웃도는 가장 모범적인 후속작인 셈이다.

채도 낮은 푸른 색조와 쉴 사이 없이 흔들리는 핸드헬드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때문에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공간을 비추는 카메라는 그 사건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한다. 관조한다기에는 지나치게 화자인 Bourne에 가까이 붙어 있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그 어지러움 때문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오히려 감정 이입을 돕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는, 그 독특한 느낌의 카메라를 통해 Bourne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Bourne의 여정은 언제나 그의 과거를 찾는 것에 집중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과거는 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거는 날카롭게 이를 세운 거대한 적들에게 쫓기는 단초만을 제공했을 뿐이다. 끝끝내 완전하게 알려지지 않는 그의 과거가 하는 주된 역할은, 숨막힐 정도로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액션 시퀀스들의 연결고리이다. Bourne Identity에서부터 Ultimatum에 이르기까지 Bourne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 보면 그 행적에는 외려 치밀한 논리 전개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감각적으로 움직이고, 적과 부딪힐 만한 장소를 찾는다. 적을 해치우기 위해 적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은 적과 내가 부딪힐 당위성을 제공하기에 가장 알맞은 방법이다.

Bourne 시리즈의 액션은 언제나 비슷하다. 모양새가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다. 상처입고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모습과는 반대로 액션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순간에도 오히려 냉정하고 건조하다. 칼리로 알려진 격투를 구사하고, 빠르게 몸을 날리는 Bourne의 모습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초인적인 그것이지만 화면 속에서만큼은 온전히 현실성을 획득한다. 특별히 어려운 추리를 요구하지 않지만 지켜보는 순간 경탄하게 되는 잘 짜여진 액션은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능수능란해졌다. Waterloo에서 Ross를 탈출시키는 장면은 시리즈의 팬이라면 누구나 감탄하며 지켜보게 될 부분. 전작과의 연결고리가 강하지 않으면서도 전작을 즐겨 본 사람이라면 놀라게 될 작은 반전도 기가 막히다. 설정과 반전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보는 사람에게 경탄을 안겨주는 멋진 전개 덕분에, 결국 Ultimatum을 보고 돌아와 Supremacy를 보고, 다시 영화관으로 가서 Ultimatum을 보게 되었다.

SpiderMan이나 DieHard 시리즈가 보여준 액션이 헐리우드 영화들이 익히 보여준 익숙한 스타일의 액션이었다면 Bourne 시리즈의 액션은 그것들과는 사뭇 궤가 다른 류의 액션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전기를 찾아 헤매던 007시리즈가 Bourne의 느낌을 차용했다 하더라도, 시종일관 우울한 얼굴을 한 채로 자기 자신을 찾아 뛰어다니는 Bourne이 주는 느낌과는 같을 수가 없다. 비록 현실의 색채를 띈 Bourne이 실제로는 고뇌하는 슈퍼히어로에 더 가깝다고는 하지만, 그가 가지는 고민은 온전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도 함께 나눠야 하는 숙제이니까. 계획했던 것처럼 아름답게 어울리는 전작들과 함께 영화 자체로서 보여주는 탁월한 완성도 만으로 이미 Ultimatum은 Masterpiece로 부를 만 하다. 훌륭하게 마무리지은 Bourne의 마지막 여정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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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ormers

Movies 2007. 6. 30. 23:36



우리가 마이클 베이에게 기대하는 어떤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순위를 매겨보라고 이야기한다면, 화려하고 강렬한 이미지와 거대한 스펙터클은 항상 우선 순위에 있을 것이고 사람을 감탄시킬 수 있는 장대하고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는 바닥이나 순위권 밖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마이클 베이에 대한 폄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마이클 베이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장단점을 잘 조합하여 적어도 보기에 즐겁고 잘 팔리는 영화를 생산해 내는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야말로 남자들의 꿈과 희망(이거나 혹은 이었거나)인 변신 로봇인 다음에야 이미 시작하기도 전부터 점수를 반은 먹고 들어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다.

다행스럽게도 영화 내내 마이클 베이는 처음 먹고 들어간 절반의 점수를 성공적으로 지켜 내는 듯 하다. 보통의 SF영화에서 흔히 보일 법한 도식적인 색채와 배경위에 덧대어 그린 로봇들의 이미지는 비유나 은유 없이 문자 그대로 화면 속에서 살아서 움직인다. 육중한 무게가 부딪혀 나가떨어질때 느껴지는 아찔한 충격, 그 큰 몸에서 터져나오는 강렬한 속도감을 바라볼 때면 어릴 적 변신 로봇을 좋아했고 지금에 와서는 자동차에 돈을 쏟는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아니 몸에서 피가 끓는 느낌을 받았을 게다. 처음 지구에 도착한 로봇들이 변신하는 장면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고.

다만 앞서도 이야기했듯, 마이클 베이에게 기대하지 않은 어떤 것을 여전히 여기서도 기대할 수 없다. 강렬한 이미지들의 연속 사이에 얼기설기 끼워넣은 이야기들은 이미지의 충격이 가실 때 쯤이면 같이 허물어져 내린다.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는 온 몸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이길 강요하지만, 반대로 이야기에 대한 감정 이입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스스로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액션을 조각하는 능력이 조금만 더 정교했더라면, 나는 Two thumbs up을 외치며 그것만으로도 온전히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멋진 화면은 때로는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울 때가 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고 사람들에게 피끓는 화면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반대로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변신 로봇을 안고 잠들었던 남자들이나, 지금도 가끔 즐거운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하기는 하다. 꿈 속에서, 머릿 속에서 그렸던 것들이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날이 올 거라고는 나도 수이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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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ates of the caribbean : At world's end

Movies 2007. 5. 24. 21:56

왜 이 사진이냐..그냥.

(스포 좀 있음.)

애초에 원작이랄 게 없이 컨셉뿐인 시작이었길래 그런지 이 사람들의 목표는 한 가지였던 것 같다. 갈 수 있는데 까지 가 보기. 덕분에 1편은, 어지간한 블록버스터를 찜쪄먹는 거대한 스케일의 개그영화가 되었다. 여기저기 누더기처럼 뚫린 설정과 이야기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후속편을 만들면서도 이런 자세는 변하지가 않아서, 여기저기서 이야깃거리를 주워 담고 개그를 적당히 털어넣고 슥슥 섞어넣는다. 다만 작정하고 막 나가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방향이 변해갔달까. 1편에 비해 2편은 무겁고 음침해지고, 2편에 비해 3편은 더욱 그렇다. 단 하나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강렬한 시각적 쾌감과 롤러코스터에 비유하면 딱 맞을 액션의 완급.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야기에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이 화면에 몸을 맡기고 키들대기만 하면 되는 영화라는 이야기. 결과만 보면 나름 합리적인 [것처럼은] 보이던 잭은 시리즈가 흐를수록 문자 그대로 담백하게 [미쳐가고] 계시고, 맨날 잭만 따라 찌질찌질찌질하시던 윌과 엘은 세상의 풍파에 적당히 물들어 주셨는지 서슴없이 배신하고 뒷통수를 치는 참으로 해적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단체로 쌈싸먹어버리려는 음흉한 악당도 하나 계셔주시고, 2편에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 잭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도 나와 주시고. 이제 적당히 버무려 넣고 탈탈탈 털어주기만 하면 되겠네.

왜 하필이면 싱가폴인지 - 그 동네 풍광이 왜 그 모양 그꼴인지는 별개로 치고 - 버켓과 잭의 계약은 무엇이었는지, 바르보사와 잭의 비밀은 무엇인지, 칼립소는 뭐먹고 살고 있는지. 해적들이 막판에 외치는 그 자유와 용기에 대한 선언이 진짜 [자유무역선]들에게는 얼마나 악몽이었을지, 고로 정말 나쁜 놈들은 누구인지..는 중요할 것 없겠다. 배는 바다를 계속 떠돌게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지 않나. 영원히 항해하게 될 윌에게 건배. 망부석처럼 기다려야하겠지만 그래도 행복할 엘에게 축복을. 점점 좁아지는 세계, 그러나 언제나 꿋꿋이 거침없이 바다를 건널 우리의 잭 스패로우에게 만세를.

p.s : 다음 작품은 아마도 [페르시아의 왕자]가 될 거라고. 이 정도 수준으로만 만들어 준다면야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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