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l'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07.05.30 The two-income trap
  2. 2007.05.28 역치
  3. 2007.05.27 The speed of dark
  4. 2007.04.26 도자기
  5. 2007.04.22 다무라 류이치

The two-income trap

Literal 2007. 5. 30. 15:20
맞벌이의 함정 -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
원제 The Two-Income Trap - Why Middle Class Mothers and Fathers Are Going Broke (2003)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엘리자베스 워런 (지은이), 주익종 (옮긴이) | ISBN(13) : 9788991071025


명백한 사실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현 세대의 가계소득의 합계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한 세대 이전의 그것에 비교할 때 약 170% 정도이다. 소득수준의 증가가 명확하게 보이고, 이유 또한 자명하다. 명징하게 보이는 소득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함으로서 얻은 소득이 가계소득의 증가로 이어졌다.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소득수준의 증가는 가정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불의의 사고로부터 가정을 보호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1999년 기준으로 가정파산을 신청한 여성의 숫자는 - 편모가정을 포함하기 때문에 [여성]의 숫자가 된다 - 81년 대비 무려 662%가 증가했다. 숫자가 틀렸든 기존의 관념이 틀렸든 둘 중의 하나는 옳지 않음이 분명해 보인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파산의 원인을 경제활동을 하는 개인에게로 돌린다. 수입의 증가에 따라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재화에 불필요하게 수입을 낭비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활동의 주체는 결국 개개인이고, 그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소득을 소비한다는 점만 본다면 수긍할 만 하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문제라면, 이렇게까지 높은 증가율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는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귀금속 따위를 구입하느라 한 달치 월급을 다 써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증가율의 모든 원인이 그것 하나 밖에 없는 것일까?

[비용의 증가]로 상황을 설명해 보자. 주택비용의 상승이 대부분 가정에게로 돌려졌다. 주로 파산 신청을 하는 가정 구성 - 유자녀 부부 - 의 주택 구입비는 15년 사이 약 100% 상승했다. 이러한 구입 비용을 감수하고 구입한 집이 이전 세대에 비해 넓어지고 호화로워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소위 교육 환경이 좋은 - 좋은 공립 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 곳에 위치하고 비교적 안전한 장소를 구하는 댓가가 그 비용이다. 그리고 이 비용의 급격한 증가는, 모순같지만 수입의 증가에 의존한다. 맞벌이의 증가로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증가분의 소득이 주택 구입비를 상승시키는 입찰 경쟁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이미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이러한 현상은 고착되었고, 개별 가정이 이러한 경쟁을 중단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그 가정만 탈락해 떨어져 나가게 된다. 이와 더불어 비용의 증가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전업주부가 가정에서 이탈함으로써 가정내 비용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아픈 누군가를 간호하고, 집을 돌보는 모든 것이 전업주부가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순간 가계 내의 비용으로 고정된다. 게다가 자녀의 교육비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프리스쿨에 들어가는 비용, 한해한해 올라가는 대학 등록금은 온전히 사회가 아니라 개별 가정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예전 세대와 같은 수준을 영위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소득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비용의 증가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전체 소득 대비 고정비용의 비율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구성원의 일시적인 휴직/해고나 병환과 같은 재난이 닥치게 되면 아무런 안전판 없이 그대로 파산이라는 파멸로 이르게 된다. Downshifting의 허상은 여기에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겼을때 외식을 줄이고, 통화비용을 줄이고 살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달 고정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주택비용, 자녀의 교육비, 병원비의 비중이 일반적인 소비보다 훨씬 크고 무거우며,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Downshifting을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가족의 병원비를 줄이라고, 십수년에 걸쳐 구입한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라고 이야기하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사회적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을때, 개별 구성원의 합리적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확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상황을 기준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현재 한국의 사정에 비추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경제활동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맞벌이를 하고 있지 않더라도 한 번쯤 읽어보아야 할 듯.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사회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경제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편견에 가까운 주장을 올바로 바라보는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

역치

Literal 2007. 5. 28. 21:14
글을 쓸 때 [누가 이 글을 읽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글을 수용하는 정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걸 고려하지 않고 글을 쓰게 되면 크게 낭패를 본다. 이런 문제는 장르문학에서 더 크게 불거지는데, 보통의 글은 현실이거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상황을 가정하여 씌여지고 수용하는 쪽 또한 그 현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은 반면 판타지/SF와 같은 장르에서는 글의 뿌리가 되는 세계관 자체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근미래를 상정한 세계에서 주인공이 프로그래머인 소설을 생각해보자. 현실성을 높인답시고 본문에 코드를 직접 써내려가고, 그 코드가 글의 전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만든다면 이 글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본인은 이런 글을 실제로 봤다) 수용자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라면 그것을 제한하여 표현하거나, 혹은 표현하더라도 시간을 들여 받아들일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이계깽판판타지등등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이런 쪽에서 나오는데, 본문에서 몇십 페이지를 들여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와 인종과 언어와 기타등등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이 그 예.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중에 하나이다. 차라리 역치가 매우 낮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는 편이 훨씬 낫다. [The speed of dark]가 좋은 예. 반대로 [눈물을 마시는 새]와 같은 경우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상정하여 전개하였음에도 수용자를 순응케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좋은 예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

The speed of dark

Literal 2007. 5. 27. 19:43

인지를 바탕으로 인식하고, 인식을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하여 이해한다. 그렇다면 인지의 과정 자체가 다른 사람들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이해의 과정, 즉 어느 정도의 편차가 있더라도 공통적으로 그리할 것이라 예측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구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편차와 그렇지 않은 편차와의 간격은 얼마나 넓은 것일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누군가를 [정상]이라고 이야기하고 그 사람의 일탈을 평균 사이의 오차로 받아들이고, 어떤 기준으로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단정짓고 모든 행동을 정도를 벗어난 편차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Lou Arrendale과 그와 함께 일하는 분과의 직원들 모두가 가진 단 하나의 증상인 자폐증이 그 간격을 결정짓는 선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고 그들을 비정상으로 취급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 선대의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늙어 사라지고, 후대에 태어날 사람들은 특정 시기에 받을 수 있는 치료를 통해 자폐라는 증상이 사라지기 완전히 직전인 마지막 세대에. 표정으로 기분을 분간하고, 말투나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관용어를 이용해 표현하는 것에는 완전히 서툴고 힘겨워하지만 특정한 관계를 인식하고 패턴화하여 습득하는데에는 소질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데에는 그러한 특질들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재직중인 회사에서 실험적인 치료법을 강압적으로 적용하려 들면서부터 많은 것들이 변해가기 시작한다.

[내]가 [나]로 남아있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한 특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나를 드러낸다고 본다면 그 특질이 변화했을때 나는 여전히 나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하게 되는 나는 여전히 나일까. Lou Arrendale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국은 선택한다.

일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세계의 구성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가운데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자폐아를 입양하여 20여년 이상 양육하면서 작가가 얻은 자폐아의 묘사 또한 탁월하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에 대한 일상적인 편견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책. [우주류]로 이름을 알리신 정소연씨의 깔끔한 번역도 즐거움을 더한다. SF 카테고리로 묶여 있지만 기반이 되는 간단한 설정을 제외하고는 SF적인 설정에 휘둘리지 않는 책이기 때문에 카테고리에 대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 Ted Chiang의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와 함께 추천.

:

도자기

Literal 2007. 4. 26. 15:26

엔간해서 펌질은 안하지만 너무 애틋해서. 전체를 보려면 여기로.
:

다무라 류이치

Literal 2007. 4. 22. 22:11
말 따위는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내 나라 말과 사소한 외국어를 배운 탓으로
나는 그녀의 눈물속에 멈춰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