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치
Literal 2007. 5. 28. 21:14글을 쓸 때 [누가 이 글을 읽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글을 수용하는 정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걸 고려하지 않고 글을 쓰게 되면 크게 낭패를 본다. 이런 문제는 장르문학에서 더 크게 불거지는데, 보통의 글은 현실이거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상황을 가정하여 씌여지고 수용하는 쪽 또한 그 현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은 반면 판타지/SF와 같은 장르에서는 글의 뿌리가 되는 세계관 자체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근미래를 상정한 세계에서 주인공이 프로그래머인 소설을 생각해보자. 현실성을 높인답시고 본문에 코드를 직접 써내려가고, 그 코드가 글의 전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만든다면 이 글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본인은 이런 글을 실제로 봤다) 수용자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라면 그것을 제한하여 표현하거나, 혹은 표현하더라도 시간을 들여 받아들일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이계깽판판타지등등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이런 쪽에서 나오는데, 본문에서 몇십 페이지를 들여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와 인종과 언어와 기타등등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이 그 예.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중에 하나이다. 차라리 역치가 매우 낮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는 편이 훨씬 낫다. [The speed of dark]가 좋은 예. 반대로 [눈물을 마시는 새]와 같은 경우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상정하여 전개하였음에도 수용자를 순응케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좋은 예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