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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鬼

Literal 2007. 2. 9. 12:54

처녀가 말했습니다.
- 가겠습니다.
촌장이 답했습니다.
- 눈보라가 시작된 이래 이 땅과 저 땅을 오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 하지만 단 한 사람은, 이 땅에 도착했지 않습니까.

- 그리고 [눈보라 속에는 惡鬼가 살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그자리에 쓰러져 죽었지. 눈보라가 휘몰아친지도 거진 5년, 저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내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부는 공감하네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않으시겠소? 죽어 일찍 만나느니 조금 더 기다리더라도 살아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늙은이의 말이라 흘려 듣지 말고 한번만 더 생각해 주시게.

- 말씀하신 대로 5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혼약을 앞두고 이리 된 지 그 긴 시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시간 앞에 마냥 서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걷다 쓰러져 죽어도 좋으니 보내 주십시오.

- 정말로 걷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으면 내게도 말을 않고 떠났겠지, 안 그렇소? 알겠네, 그리 마음 굳으니 내가 어찌 말리겠는가. 다만 사람들 모르게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구랴.

처녀는 집으로 돌아가 천천히 짐을 챙겼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걸어도 두 달은 족히 걸리는 멀고도 긴 땅, 그러나 처녀는 오직 추위를 막을 옷가지와 작은 짐꾸러미만을 챙겨 한 구석에 놓아 둔 채로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았습니다. 늦은 밤 저 너머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들리는 눈보라,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갈 걱정보다 그 끝에 있을 당신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동이 트기 전 마을 입구에는 촌장이 큰 꾸러미 하나를 바닥에 두고 개 세 마리를 작은 썰매에 매어 둔 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이 땅에 도착해 죽었던 여행자가 길잡이로 쓰던 개라오. 무슨 일을 겪었던지 성격이 워낙 난폭해져 있어 숨을 거둘까도 생각했지만, 그리 맘먹기도 쉽지 않아 지금까지 데리고 있던 것이 이리 쓰이게 되었구려. 부디 가는 길 조심하시고, 단 한 가지만 명심하시게. 굶주린 개는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이 꾸러미의 식량을 적당히 잘 나누어 주시게.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되오.

처녀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는 썰매에 자신의 짐과 식량 꾸러미를 실은 후 천천히 마을을 떠났습니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앞을 가리는 눈을 느끼는 순간 처녀는 눈보라속으로 자신이 들어 왔음을 알았습니다. 몸서리쳐지는 추위, 한 발자욱 앞은 커녕 낮과 밤조차 구분이 어려운 잿빛 하늘, 하루를 달리고 이틀을 달려도 변하지 않는 눈앞의 정경에 처녀는 어느덧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완전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개들만이 이 지독한 광경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개들이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리고,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느낄 때 마다 처녀는 꾸러미 속의 식량을 개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처녀는 하루, 이틀 재던 시간을 식량 두번, 식량 네번..으로 재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때일까 처녀는 썰매 곁으로 쓰러진 시체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독히 가려진 시야 속에서도 그것만은 똑똑히 보였습니다. 추위가 그를 잡아먹은 것일까, 혹은 진실로 악귀가 살고 있는 것일까, 눈보라 너머만을 보며 달리던 처녀가 처음으로 눈보라 안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체들은 자주 보였습니다. 여자일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남자였습니다. 나이든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젊은이였습니다.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흘낏흘낏 보이는 시체들은 왜 자신이 거기에 스러진 채 한없이 있어야 하는지 말해주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이 더 지나고 또 일주일 가량이 더 줄어든 어느 날, 처녀는 꾸러미의 식량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일러도 두 달은 걸리는 길, 그러나 식량은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할 것 처럼 보였습니다. 개들은 종종 멈추어섰고, 식량을 얼른 던져주지 않을 때면 처녀를 노려보며 으르렁댔습니다. 그럴 때면 처녀는 겁에 질려 보통때 보다 더 많은 식량을 던져주고는, 후회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느날엔가 개들이 멈추어 선 때, 처녀는 식량 꾸러미에 더이상 잡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공포에 질렸습니다. 으르렁대던 개들은 식량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처녀에게 다가오려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처녀는 겁에 질려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개줄을 풀어 버리고 채찍을 들어 개를 저 멀리로 쫓아 버렸습니다. 개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더이상 갈 길이 망연하다는 것을 깨달은 처녀는 초조해졌습니다. 짐을 챙기고 일어서 걸어가려는 순간, 개들이 썰매 근처로 돌아왔음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개들에게 다가간 처녀는 곧 그 자리에 굳어 버렸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개를 썰매에 다시 매고 달리기 시작한 처녀는 개들의 입에 물려 있던 다리와 팔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흘 밤과 사흘 낮이 넘는 시간을, 눈물이 흘러 얼굴에 얼어붙어 터지고 피눈물로 변하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끝없이 불어오는 회색 바람과 눈앞을 가로막는 가이없는 산자락 새로 휘몰아치는 눈을 뚫으며 처녀는 조금씩 변했습니다. 한참을 굶어 가며 버티던 처녀는 이윽고 개들이 물고 온 것들을 조금씩 뺏기 시작했습니다. 사흘 밤 사흘 낮을 흘리던 눈물도 줄어들었습니다. 서슴없이 죽음을 먹으며 달려간 뒤에 들려오는 원한과 저주의 목소리에도 귀를 막았습니다. 어느 날엔가 개들이 물고온 고깃 덩어리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 처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집념이 처녀를 채찍질하고 또 채찍질했습니다. 세상마저 홀리게 했던 아름다운 미소가 머물던 입가는 갈라지고 찢어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얼음보다 투명하고 맑았던 살결과 어떤 것과도 차마 비교할 수 없을만치 아리땁던 얼굴이 얼어붙어 터지고 굳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처녀는 절망도 아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셀 수 없이 길고 긴 시간이 지나 눈보라를 뚫고 당신이 살고 있는 그 땅에 다다른 것을 알게 된 처녀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긴 시간 보지 못한,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나의 사람을 만나게 된 기쁨이 굳어버린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띄우게 만들었습니다. 마을의 입구에 다다를 즈음 처녀는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그 앞을 가로막은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당신임을 본 처녀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 당신이 먼저 외쳤습니다.

- 멈춰라! 눈보라 속에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가 있다 하더니 그것이 사실이구나. 이제 눈보라 속에 잡아먹을 사람이 없어 예까지 쳐들어 온 것이냐?

처녀는 놀란 눈으로 말을 이으려 했지만 오랜 시간 얼어붙은 목은 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흘릴만큼 흘려 굳어버린 눈물도 더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해진 손이 떨리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하고 가까이 다가서려 했으나 청년은 더이상 다가오는 것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말을 이으려던 처녀는 개들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보라 속을 빠져나온지도 시간이 흘러 굶주린 개들은 더 이상 처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를대로 쇠약해져 가벼워진 처녀와 썰매 정도는 짐이 되지 않는다는 듯, 개들은 가장 가까이 있는 먹이감인 청년에게로 한발짝씩 다가섰습니다.

처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서 개들 앞을 막았습니다. 그리고는 청년을 바라보았습니다. 땅을 딛고 스스로를 지탱하던 다리가 사라질 때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약속의 손가락을 걸던 손이 사라질 때도, 당신을 볼 때면 한없이 뛰던 심장과 끝없이 끝없이 당신만을 보고 싶던 눈마저 개들이 가져갈 때에도 끝까지 처녀는 당신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처녀의 숨이 끊어질 즈음 청년은 개들을 한 마리씩 죽이며 처녀를 보고 중얼거렸습니다.

- 죽어가는 순간까지 저주하다니, 지독하다. 지옥에나 떨어져 죄를 뉘우쳐야겠구나.

처녀는 그 말을 듣고서야 마지막 남은 눈을 조용히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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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페이지 단편소설

Literal 2007. 2. 8. 13:22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A4지 한 장 분량으로만 쓸 수 있도록 제한하고, 당선작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지금까지 총 400편, 해서 이번에 나온 한페이지 단편소설 400. 놀랄만큼 수준이 높은 글이 있는가 하면, 고만고만한 글도 있고 다양한 주제와 생각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 개인출판쪽에 가까워서 책의 퀄리티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본인의 글은 그리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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