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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미래

Literal 2008. 7. 6. 21:04
제국의 미래
Day of Empire
에이미 추아(지은이) 이순희(옮긴이)|ISBN(13) : 9788996079118


하나의 국가의 흥망성쇠를 논할 때도 우리는 명확하게 그 이유를 규정지을 수 없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단 하나의 큰 원인이 국가를 멸망으로 몰아가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은 복잡한 사건들과 기저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어느 순간 얽혀들어 만들어내는 결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반적인 국가의 정체를 이야기할 때도 이렇게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니만치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세계를 아우르는 제국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욱 복잡해집니다. 시대에 따라 크기와 규모는 다르겠지만 당대의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 전체에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제국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그 제국이 형성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공통점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강력한 힘을 지닌 제국의 출현과 멸망이 설명할 수 없는 운이나 적절한 시기에 있었다고 말해버리는 것은 편리하겠지만 게으른 접근법일 것이며 그보다는 각각의 경우를 관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에 대한 논의만큼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국이 단순히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숨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제국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국의 표상과도 같이 인용되고 있는 고대 제국인 로마나 페르시아, 혹은 원(몽골)을 생각해본다면 광대한 영토가 제국의 존속 요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슬람권의 제국이나 명과 같은 국가를 생각해본다면 제국 내의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는 특정한 요소 -그것이 종교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많은 국가들을 결속시켜 세계의 축 가운데 하나로 적지 않은 시간 군림했던 소련을 제국으로 칭하지 않았으면서도 그러한 통일된 요소나 광대한 영토가 없는 단일국가로서 세계에 군림하고 있는 오늘날의 미국을 사실상 제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앞서 말한 정의는 제국의 요소라기보다는 각 개별 제국들의 개성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제국들이 그러한 개성의 면모와는 관계없이 세계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가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고대의 국가들이 가질 수 있었던 영향력의 범위는 지금의 세계에 비추어 볼 때 턱없이 작은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늘나의 기준이며 당시의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었던 세계의 범위와 당시의 제국이 영향력을 뻗힐 수 있었던 거리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해야 할것은 제국들은 어떻게 그러한 영향력을 얻었고 지속했으며 어떻게 그러한 영향력을 잃고 몰락하였는지가 될 것입니다.

국가가 인적 자원의 집합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정의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의 제국이 정치/경제/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중심이 되고 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적 자원의 유입이 필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영토를 부속지로 만들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그 영토 내의 사람들을 제국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고 그것을 유지하여 타 국가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것을 그러한 상황을 만들고 지속시키기 위한 정책이라고 할 때 필자는 이를 전략적인 관용이리고 칭하고 제국의 존속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히 제공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각 개인의 재능에 대한 보상의 성격에 가깝기 때문에 오늘날에 쓰이는 것처럼 인권의 개념은 포함치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방향으로라도 제국이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제국의 존속을 위한 필요조건이 갖추어진다는 것이며 제국의 그러한 관용의 정신을 자의든 타의로든 버리는 순간 제국의 틈새에 균열이 나타난다는 점일 것입니다. 예전의 제국들이 보여주는 실례로서 유대인의 박해로 인한 금융산업의 괴멸이라든가 제국이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나 당시의 일본이 보여준 극심한 불관용으로 일어났던 거대한 반발, 영국이 인도를 끝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일련의 경우를 본다면 이러한 주장에는 어느 정도의 타당함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미국이 제국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의가 정리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의 제국에 비추어 볼 때 부속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단일 국가라는 점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 어느 제국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만치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치는 어느 정도 공고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초의 민주주의 제국으로서 그들의 법이 보장하는 폭넓은 자유는 분명 미국의 영향을 받는 미국 외의 사람들에게 있어 적지 않은 유인동기가 되는 것은 사실이며 이를 통해 미국이 일종의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만들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용의 확대는 역설적으로 내부의 불관용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데, 전체를 통일할 수 있는 특정한 기조가 없는 상황에서 집단의 다양성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균형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강경 이슬람권의 극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프랑스의 이민자 배척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기본적으로 국가라는 집단은 이러한 정체성의 통일을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에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보다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합니다.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 제국이라는 특이한 위치가 그러한 상황을 만들게 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수많은 다인종 다문화를 포괄하면서 임계점 이상으로 끓어오른 배척과 불관용의 분위기는 국가로서 맞이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이것 때문에 미국은 다른 국가에 강대하지만 친화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를 배척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멕시코 국경 펜스 설치와 같은 사소한 분쟁에서부터 나아가 악의 축과의 전쟁에 이르는 거대 분쟁까지 911이후의 미국은 제국이자 선도국가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천명하는 한편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는 역으로 그 동안 미국의 우산 아래 이루어졌던 pax americana를 버리고 독자적인 틀을 구축하고자 하는 경향을 촉발시켰습니다.

아직까지 새로운 축들로서 거론되는 유럽연합이나 중국과 같은 세력권이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항해 저자는 것은 폭넓은 관용에의 복구를 통해 미국이 스스로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금과 같은 배척은 이전의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제국의 쇠망을 재촉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을 제시하기 전에 과연 미국 주도의 세계구도가 과연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쁘지 않은 것을 굳이 고칠 필요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러해야 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새로이 나타나는 축들은 예전의 소련과는 달리 이념보다는 각자의 이익을 지향하고 있고 이러한 경쟁 구도가 각자의 세력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세계 질서의 재편 또한 고려해 보지 못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관용이라는 키워드는 일견 매력적이고 개별 국가나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서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매혹적인 관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지 한참 지난 오늘까지도 온전한 의미로서의 관용보다는 전략적인 의미로서의 포섭에 더욱 가깝게 이러한 관념이 사용되고 있다는 현실을 본다면 이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상호 발전의 도모에 가깝다기보다는 제국이 부속국에 내리는 시혜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이미 미국은 영토를 점령하지 않고도 확고한 영향력을 구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이런 상황에서의 관용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는 유인동기와 영향력을 이용한 거래에 더 가깝지 않나 합니다. 어차피 국가와 국가, 혹은 국가와 개인 사이에 완전한 의미의 상호존중이 있을 수 없다면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다른 대안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현재 제국의 우산 아래에서 살아가는 국가들이 취해야 할 태도일 것이라고 봅니다.

옛제국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흥미로운 해설과 더불어 관용과 불관용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것은 저자가 저서에서 이루어낸 충분한 성과이지만, 이러한 키워드에 시종일관 천착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pax americana에 대한 정당성을 당위 없이 고수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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