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2.09 Mass Effect 2

Mass Effect 2

Games 2010. 2. 9. 01:44

ME1은 바이오웨어가 추구하는 경향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이제는 클리셰에 가깝게 고착화된 다양한 시스템들을 줄이는 한편 RP에 어울리는 감정 이입을 충실히 이끌어내기 위한 밀도있는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것은 바이오웨어가 애초부터 지향하던 주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이전 세대 XBOX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던 [구 공화국의 기사단]에서도 복잡한 주사위굴림을 잘 포장한 액션성 있는 전투와, 스킬/레벨에 기반한 시스템을 간소화하는 것과 같은 지향점들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더하여 이전의 서양 RPG들에 굴레처럼 씌어 있던 명확하지 않은 자유도에 대한 강박 또한 밀도있는 스토리텔링과 함께 각각의 스토리의 전개 순서를 쪼개어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에게는 선택의 여지를 제공함과 동시에 비교적 용이한 방법으로 세계를 구축하였다. 

ME1은 말하자면 이러한 경향성의 완성본에 가까운 느낌이었던 게임이었다. RPG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처럼 여겨졌던 성장 요소들 - 경험치 / 레벨 / 스킬 / 아이템 - 은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슈터의 외양을 잘 덧씌운 전투를 통해 [구 공화국의 기사단]에서도 남아 있던 주사위굴림, 잠시멈춤과 같은 턴 기반의 양식을 깔끔하게 포장해 냈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잘 갖춘 밀도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충실한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이것이 바이오웨어가 지향하는 캐쥬얼한 RPG의 단면이라고 생각했고, 그 후속작 또한 이러한 범주 안에서 크지 않은 변화를 통해 전작을 계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전히 틀렸다. ME2는 그보다 한 발자욱 더 나갔다.

ME2를 플레이하면서 느끼게 되는 이질감은 매우 크다. RPG에 익숙하며, 동시에 전통적인 RPG를 ME2에서 기대했던 플레이어라면 그 이질감을 더욱 크게 느낄 것이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시스템의 축소를 지향했다면, ME2에서는 전통적인 RPG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시스템을 통째로 들어내고 매우 간략하게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레벨은 남아있지만 전투를 통해서는 레벨 상승을 위한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인공은 성장한다. 다만 그 성장은 오직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서만 진행된다. 일반적인 형태의 인벤토리-아이템 구조는 완전히 사라지고, 간략한 업그레이드 시스템만이 남았다. 바이오틱 계열의 스킬들은 그 효과가 매우 약화되어 슈터의 보조 기술에 맞게 자리잡았다. 전투는 온전히 액션으로 전환되었다. 트리거를 통한 타게팅은 아예 없어졌고 액션게임과 동일한 피격 효과가 생겼으며, 심지어 무기는 재장전이 필요하다. ME1에서의 슈터는 RPG의 시스템에 기반한 일부였다면 ME2는 슈터를 베이스로 한 게임이 되었다고 주장해도 무방할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이야기하자면 심하게 변형된 형태의 게임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ME2가 이전까지의 바이오웨어 게임들과 동일한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전작보다 훨씬 심화되고 발전한 스토리텔링에 있다. ME1에서의 대화 시스템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Paragon / Renegade 시스템은 지속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구한다.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대응하는 과정이 ME2가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게임의 큰 틀이다. 

특히, ME1과 비교해 볼때 기-승-전-결에 이르는 일반적인 이야기 전개 구조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이야기 전개를 극도로 파편화시킨 것이 이러한 선택의 효과를 키우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초입부의 튜토리얼을 넘는 순간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최종 목표까지 보게 된다. ME2에서의 중심 이야기는 기-(승전)결에 가까울 정도로 짧고 명확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전개되는 것은 연관성이 거의 없는 산발적인 에피소드에 가까운 각 토막들이다. 각 토막들이 다른 토막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은 각각이 기-승-전-결을 가지는 짧지만 완성된 이야기들로 전개된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전체 플레이에 비해 짧고 명확한 동시에 강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요구하도록 해서,강렬한 초입부와 거대한 클라이막스 사이의 전개 과정의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전작에서 지적받았던 단점들인 비쥬얼 상의 몇몇 난점들이나 시스템상의 난점들도 일신한 디자인과 함께 대부분이 해소되어 있어, 커다란 줄기만을 놓고 보면 완벽에 가깝다고 해도 부정하기가 힘들 정도의 게임이 되었다. 반면 새로운 디자인에 맞추어 발생하게 된 문제들도 있는데, 개중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세계가 협소하게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바이오웨어의 게임들은 구축된 세계는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 돌아다닐 수 있는 지역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었는데, ME1에서는 그나마 넓었던 배경 세계는 2편에서의 이야기 구성의 변경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1편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Citadel과 같은 장소를 논외로 하더라도, 다른 지역들도 원거리 이동을 위한 차량을 제거하고 각 이야기 토막의 길이를 조절하면서 협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더불어 이러한 지역적인 협소함 이외에도 이야기 전개에 있어 필수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대부분 사라져서, ME1에서 비교적 흔하게 보였던 [영어를 쓰지 않는 외계인]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사라진 것도 심리적인 공간감을 줄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ME2는 많은 것들이 변한 게임이고, ME1과 비교해서도 외양만이 다소 닮았을 뿐 다른 게임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가 되었다. 이것을 장르 혼합의 좋은 예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고, 장르 혁신의 모범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평가하든, 전작이 보여준 성취를 훌쩍 뛰어넘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게임이다.
: